오래된정원의 借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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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3.27 고구려 요동정벌의 불가성에 대해

고려의 요동 정벌은 당시 상황을 고려하면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가끔 고려가 요동을 치면서, 몽골 세력의 도움을 얻을 수 있거나, 

혹은 명이 몽골과 싸우는 혼란기라 그 틈을 노리면 가능하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일단 구구절절한 설명 필요 없이, 당시 연표만 보아도 이건 불가능한 소리임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1379년, 아유시리다라를 계승해 칸이 된 북원의 토구스 테무르는 나하추 등을 이용해서
아예 요동 정벌을 노리면서 통치의 중심지를 카라코룸에서 쿨룬 부이르로 바꾸게 되는데


나하추가 항복하게 되면서 이런 시절도 다 가고


1388년 4월, 명나라의 남옥이 15만 대군을 이끌고 쿨룬 부이르를 습격함으로서,
포로만 10여만명에 가깝게 잡히는 엄청난 대패를 당합니다.


게다가 토구스 테무르가 달아날때,


아리크부카 계통의 왕족 이수데르(Yesuder)가 오이라트의 지원을 받아 그야말로 팀킬을 하면서
완전히 숨통을 끊어놓아 전멸시켰고 결국 최후까지 추격해서 나중에 토구스 테무르를 죽이게 됩니다


또 나하추가 항복하고 토구스 테무르가 격파당했을 시점부터 몽골의 왕공들이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줄을 서서 명나라에 항복을 하고 대규모 투항을 하게 되구요.







그런데

위화도 회군은 1388년 음력 5월이고 양력으로 치면 6월 말에서 7월경에 이릅니다.


앞서 명사 남옥전에서는 토구스 테무르를 격파한게 1388년 3월에 출발했다고 나와있다고, 4월경 쯤에 싸워서 결판내었을것을 보면



이미 고려가 도움을 구한다거나, 혹은 명나라의 발목을 잡아놓을 북원이라는 존재는 말 그대로 '개발살' 이 나버린 상황입니다.


그리고 웃치긴 왕가까지 죄다 명나라에 항복을 하기 위해, 1388년 9월쯤이면 사람들 이끌고 명나라를 방문하는 상황입니다.





또 이후 몽골은 사실 중국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습니다. 이 시점부터 영락제의 50만 대군이 북진하기 전까지 몽골리아의 판도는 타타르 VS 오이라트의 싸움이었습니다.  두 몽골 세력이 서로 겨루느라 다른 쪽엔 신경 쓸 여지도 없었구요.





무엇보다 위화도 회군에서 말아먹기라도 하면, 명나라의 복수 이전에



왜구가...



고려말 왜구가 단순히 노략질이나 좀 하고 마는 존재가 아니라는 점은 잘 아실 겁니다. 게다가 당장 수도까지 바로 공격해오기도 할 정도인데, 물론 진포대첩, 황산대첩, 관음포 대첩 이후로 왜구의 기세를 어느정도 꺾긴 했으나,



당장 위화도 회군이 벌어지고 1389년 박위가 전함 100여척을 이끌고 대마도를 공격합니다.
 
 
그리고 위화도 회군 직전인 1387년에도 정지가 왜구에 대한 공격을 주장하나 받아들여지지 않죠.
 
 
즉 이 시점에도 군사를 이끌고 토벌을 해야 할 정도로 왜구에 대한 위협은 남아있었습니다.





이미 고려는 당시 위화도 회군 당시 이를 막을 병력이 거의 없을 정도로 탈탈 털어서 군대를 보냈고,

결국 그 주력군이 전부 요동에서 산화한다면...



그 후에 벌어질 헬게이트는 차마 상상하기가 힘드네요. 한가지 확실한것은 요동정벌을 계획하기 이전에도 지방의 정지 같은 장군들에게 거의 지원을 못해주던 고려인데, 5만명이 몰살당하고 난 뒤라면



수도는 어떻게 지킬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삼남 지방은 그냥 왜구들 놀이터가 되지 않을까 싶네요. 이건 좀 너무 나간 상상이지만 일본 남북조 대결이서 밀린 무장들이 왜구와 연계되어 한반도 남쪽에서 근거지를 만들고 해도 토벌할 방법이 있을까 싶기도 하고 







그래도 싸워서 이기면 되지 않느냐, 이기고 이기고 이기고 또 이겨서 승리를 거둔다면 가능한 이야기 아니냐, 해보지도 않고 불가능하다고 하면 이게 말이 되느냐

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시각에 따라, 만약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회군을 하지 않고 그대로 진격했다면, 

일단 주어진 미션들은 이렇게 됩니다. 










1. 주원장의 6왕

주원장 휘하에서 특별하게 공을 세워 왕으로 까지 추봉된 여섯 명입니다.

서달, 상우춘, 등유, 탕화, 목영, 이문충이 그들이고 위화도 회군 시점에서 생존한 사람은 탕화와 목영입니다.


탕화는 고향으로 가서 숙청 피한걸로 유명하지만, 1388년 시점에서는 아직 내려가기 이전이었고,
목영은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었으니, 


위협이 과중되면 그들이 수만 군대를 이끌고 올 겁니다. 물론 이들은 원나라 군벌들하고 싸운 경험이 있고



2. 풍승, 부우덕, 남옥, 경병문


6왕 이전에, 이 당시에 왕성하게 활동하던 장수들이 이런 장수들입니다.

당장 남옥은, 위화도 회군이 벌어지던 바로 그해, 
군사 15만을 이끌고 몽골을 완전히 짓밞아버렸씁니다.

부우덕은 20만 대군으로 위화도 회군 직전인 1387년에 요동의 나하추를 항복시켰씁니다.


명나라가 이 시점에서 요동에 군단을 파견하기 어렵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남옥이나 부우덕이 활동하던 그 시기를 보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3. 주체


그리고, 요동에서 엎어지면 코닿을 거리인 북평은, 다름 아닌 미래의 영락제, 주체의 영역입니다.

주체는 정난의 변에서, 물론 건문제의 삽질이 있긴 했어도 불리한 전력으로 계속 싸웠을 정도로 군사적인 능력이 있으며,

주체의 밑에 있는 군단만 하여도 당시 고려의 전군을 능가하는 숫자고,


훗날 황제 시절에 무려 50만을 이끌고 몽골을 직접 수차례 왔다갔다 할 정도로 호전적이었고...





즉, 이성계는 요동에 진출하는 순간


부우덕과 남옥을 무찌르고
탕화와 목영을 무찌르며,
북평의 주체까지 모두 때려눕혀야 요동을 확실하게 손아귀에 집어넣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때, 남옥이나 부우덕이나 한번 움직일때 동원하던 군사가 

15만, 

20만이나 되는 숫자였고,



고려 요동 정벌군의 숫자는,



共三萬八千八百三十(공삼만팔천팔백삼십) : 모두 3만 8천 8백 30명이고

傔一萬一千六百三十四(겸일만일천륙백삼십사) : 심부름꾼이 1만 1천 6백 명이었다.



 
실제적인 전투병은 3만 8천 30명


군대의 보급에 대해서는,


以崔瑩(이최영) : 최영에게

兼海道都統使(겸해도도통사) : 해도 도통사(海道都統使)를 겸하게 하였다.

瑩白禑曰(형백우왈) : 영이 우에게 아뢰기를

臣任事旣多(신임사기다) : “신이 일을 맡은 것이 이미 많은데  

又都統海道(우도통해도) : 또 해도를 도통(都統)하면

臣恐不堪(신공불감) : 신이 감당하지 못할 듯합니다.

且今戰艦纔百艘(차금전함재백소) : 또 지금 전함이 겨우 1백 척밖에 안 되며

戍卒僅三千(수졸근삼천) : 수졸이 겨우 3천 명입니다.

臣若行師(신약행사) : 만일 군사를 출동시킨다면

當用兵萬餘(당용병만여) : 1만 명은 써야 하겠는데

倉廩匱竭(창름궤갈) : 창고가 모두 비었으니

何以供億(하이공억) : 어떻게 공급한단 말입니까." 하였다.

禑曰(우왈) : 우가 이르기를

備禦事劇(비어사극) : “방비하고 막는 일이 급하므로

不獲已(불획이) : 부득이

以卿兼之(이경겸지) : 경으로 겸하게 하는 것이니

其無固辭(기무고사) : 굳이 사양하지 말라.

且以吾國軍需(차이오국군수) : 또 우리나라의 군수(軍需)로써

餉萬餘兵誠難矣(향만여병성난의) : 1만여 명의 군사를 먹이기가 참으로 어려우니

請卿用三千(청경용삼천) : 경은 3천 명의 군사를 써서

使一當百(사일당백) : 한명이 백명을 감당하게 하라." 하였다.




원정이 아니라, 내지에서 군사 1만명 보급이 어려워서,
3천명으로 한명이 백명씩 당해서 싸우라고 드립하는 상황






이런 상황에서 이성계가 수성도 아니고 되려 원정을 해서
도장깨기 하듯이 북평의 주체까지 때려눕힌다면,



아마 그는 한니발, 나폴레옹을 모두 양 발 아래 깔아뭉개는 역사상 초유의 전쟁의 신,
전쟁 그 자체가 될 지도 모릅니다. 




자....이성계 입장에서 보자면 3만 8천 명 이끌고 

15만 군대의 남옥을 무찌르고 20만 군대의 부우덕을 격파하며,

탕화를 무찌르고 목영의 기병을 격파한뒤,

10만 이상의 군대를 거느리고 북평에 있는 주체를 무찌르는 일과,



말을 되돌려서 이런 명령을 내린 왕에게로 달려가는 일 중에

어느 쪽이 좀 더 쉬울지는 상상하기 편하지 않나 싶습니다. 





현실적인 방법이 하나 있다면, 치고 빠지는 정도입니다. 


깃발 정도 세워놓고 다시 돌아온 뒤에 나중에 있을 영토 분쟁에서 이쪽의 입장을 내세우는것. 일단 이 정도는 이성계가 일전에 해낸 적이 있습니다. 여하간에 '요동 정복' 자체는 거의 꿈 같은 이야기나 다를 바 없습니다. 


Posted by 풍명금